한국다발성경화증협회

5분짜리 무용수

시인이자 교사, 그리고 무용수인 배리 월렌스타인

-크리스 롬바르디-

브룩클린의 유로파 까페에서 열린 배리 월렌스타인의 시 낭송회에서 프렌치 호른 연주자, 피아니스트 그리고 드러머가 연주를 하고 있다. 희끗희끗한 곱슬머리에다 마른 체격을 가진 월렌스타인은 편안해 보이면서도 들떠 보인다. 피아니스트가 독주를 하는 동안 그는 마지막 구절을 읊을 준비를 하면서 목을 축인다. 낭송이 끝나고 박수갈채가 이어지는 동안 그는 활짝 웃는데 그 모습이 20년간 강단에 선 교수라기보다는 락스타에 가깝다. 다발성 경화증이 얼마나 변덕스러운 질병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이 만성 질병에 의해 근본적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다발성 경화증 때문에 다른 사람이 되었어요.” 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좀 더 절제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의 자택 식당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그는 다발성 경화증 때문에 자신이 위축되었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그는 다발성 경화증이 아버지로서의 자신의 역할, 그리고 성 문제와 운동에 관해, 그리고 무엇보다 시인으로서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주저없이 털어놓는다.

시인에의 꿈

1950년대 중반에 뉴욕에서 정육업 일을 하던 아버지 맥스와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월렌스타인은 시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숨겼다. “시는 암호화된 언어라고 생각했었죠. 부끄러운 사실을 숨기면서 더욱 높은 차원의 진실을 드러내는 그런 작업이라고 생각했어요.” 라고 월렌스타인은 말한다. “아버지는 작가들이란 계집애들이나 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했죠.” 그리하여 배리는 어린 시절 육상 선수로써 연습에만 열중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육상팀 코치인 영어 선생님이 그에게 처음으로 작가의 길을 가도록 용기를 준다.

월렌스타인은 미주리 대학에 진학해 육상팀 활동도 하면서 저널리즘 수업도 수강한다. 육상팀 활동을 하면서 그는 육상선수로서 자신의 한계에 대해 깨닫는다. 1958년, 미주리 대학에서 보낸 첫 겨울에 그는 첫 다발성 경화증 증세를 경험하게 된다. “손이 부은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움직일 수가 없었죠.” 라고 그는 말한다. 증세가 가라앉은 후 그는 미주리에서는 불행한 일들만 있었다고 생각해 그 도시를 떠난다. 알렌 긴스버그의 시집 ‘외침’과 새무엘 배켓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주머니에 넣은 채로 말이다.

아버지가 화를 낼까 두려워 월렌스타인은 뉴욕으로 돌아가는 대신 뉴 올리언스로 히치하이킹을 해서 간다. 그 곳의 한 축제에서 그는 ‘캔디 바’라는 유명한 스트리퍼가 나오는 쇼의 호객꾼으로 일하게 된다. “제가 14살쯤밖에 안 되어 보인다고 저를 고용했었죠.” 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파파조 라는 까페에서 책을 닥치는대로 읽기 시작한다. “흥겨운 딕시랜드 재즈를 주크박스로 틀어놓는 대신에 그 바에서는 비밥 재즈를 연주했거든요.” 라고 그는 말한다. 그 당시 그는 T.S. 엘리엇, 딜란 토마스, 데이몬 러니언, 조지 오웰에 이르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섭렵했을 뿐만 아니라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학업을 계속하다

배리의 사랑하는 할머니가 병에 걸리자 배리는 뉴욕으로 돌아가 학업을 다시 시작한다. 뉴욕 대학교에 다시 입학한 배리는 그 곳에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은사인 유명한 시인이자 비평가 M.L 로젠탈을 만난다.

하지만 배리는 그 당시 “인생에서 또다른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1970년대 초반에 월렌스타인은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발에 참가한 바 있었고 숲이 우거진 그 마을에서 공동 생활촌을 운영하던 뮤지션 팀 하딘을 만난다. “전 가르치는 일과 글 쓰는 일을 마치면 그가 운영하던 공동 생활촌으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얼마 후 로나 하버스라는 무용수와 동거를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그 당시 “너무나 많은 일을 한 번에 하고 있었다”고 한다. 로나는 바쁘게 생활하는 그에게 “화살같다”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는 시와 감상문, 비평문을 썼다. 또 달리기를 좋아해 맨발로 해변가를 달리기도 하고 장거리 경주도 즐겼으며 대학교 건물 내에서도 달리기를 했다. 또 우드스탁의 진흙투성이 들판에서도 달리기를 즐겼다.

시력 악화로 좌절을 겪다

그러던 중 60년대의 유산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던 1977년, 월렌스타인은 좌절을 겪게 된다. 시야가 이중으로 보이기 시작했을뿐만 아니라 극심한 피로감에 시달렸다. 한 신경전문의는 그에게 시간이 지나면 점차 나아질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를 걱정하던 몇몇 친구들은 그에게 대신 심리치료를 받아볼 것을 권했다.

눈이 회복되자 그는 평소 관심 있어하던 시 낭송을 하기 시작한다. 그는 로나와 함께 버뮤다로 가 한 클럽에서 시 낭송회를 열고 이를 녹음한다. 그는 아방가르드 색소폰 연주자 찰스 타일러와 투어를 시작한다. “제 생활방식에 변화를 주지 않았어요. 제 자신을 끝까지 몰아붙였죠.” 라고 그는 그 때를 회상하며 말한다. 평소처럼 자유분방한 생활이 이어졌다. 하지만 어느날 “몸이 극도로 안 좋아졌다”고 한다. 월렌스타인의 한쪽 눈의 시력이 나빠졌고 오른쪽 다리를 못 쓰게 되었다.

그는 이번에는 큰 병원으로 보내져 종양 환자들과 뇌졸중 환자들 사이에서 여러가지 검사를 받는다.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진단을 받고는 안도를 했습니다.” 라고 그는 ‘다발성 경화증-환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한 가이드’라는 책의 공동저자인 래이브 쉐인버그 박사의 진단을 받았을 때를 돌이켜보며 말한다. 쉐인버그 박사는 그에게 다발성 경화증을 앓는 남성 환자들은 때로 발기부전을 겪기도 한다고 경고했다.

성기능 저하에 시달리다

의사의 경고는 정확했다. “한동안 성기능 저하에 시달렸어요.” 라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병이 워낙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로나와 그는 결혼하기로 한다. 최대한 빨리 가정을 이루고 싶었던 것이다.

아내의 솔직한 태도를 생각하며 월렌스타인은 미소를 짓는다. “로나는 언제나 내가 잘 해낼 것이라고 믿고 행동했어요.” 라고 그는 말한다. 여전히 사이가 좋지 못했던 아버지 맥스와는 너무나 달랐다. 월렌스타인은 아버지가 그를 불쌍히 여길 것을 두려워했다.

곧 맥스는 플로리다에서 자선 골프 대회를 조직하는 등 다발성 경화증 환자들을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애쓰게 된다. 1981년 쉐인버그 박사는 웰렌스타인의 아버지 맥스에게 “당신은 내 덕분에 할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겁니다.”라고 말한다. 배리와 로나 사이에서 아들 대니얼이 태어났으며 딸 제시카도 얼마 안 있어서 태어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매일 낮잠을 자야했던 아빠

그 당시 그는 여러모로 힘든 나날을 보냈다. 월렌스타인은 체력의 한계를 느꼈다. 그는 아이들에게 안대를 하고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매일 오후 낮잠을 자야했던 아빠의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낮잠을 자라는 것은 쉐인버그 박사의 첫번째 제안이었다. “매일 오후 3시에서 4시까지 낮잠을 자면 훨씬 편해질 겁니다.” 라고 그는 말했다.

월렌스타인은 그의 충고를 받아들여 시낭송회 중이건 외국여행 중이건 상관없이 25년째 이를 따르고 있다.

하지만 낮잠을 자야 한다는 사실이 아직까지도 부끄러울 때가 있다. “낮잠을 꼭 자야만 하는 연약한 어린아이같이 느껴져 기분이 안 좋을 때도 있죠.” 하지만 반면에 그는 “남들의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는 것에 남자로서 거부감을 느낀 적은 없다”고 말한다.

절제 있는 생활

몇 년 후 월렌스타인의 병세가 나아졌고 지팡이와 안대가 필요없게 되었다. 하지만 병에 시달리던 당시에 얻은 교훈을 잊지 않고 스트레스와 더위, 그리고 과도한 운동을 피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다발성 경화증 때문에 좀 더 절제 있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뉴욕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시낭송회를 열면서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2001년 여름 그는 케이프타운과 말리에서 8주일을 보낸다.) 그는 또한 뉴욕 시립 대학교의 시낭송 축제를 조직해 교내에서 매주 열리던 이 행사를 60개교가 넘는 학교에서 3000명의 참가자들이 모여드는, 시 전체의 축제로 키워냈다.

그는 예전보다 인생을 여유롭게 살고 있다고 했다. “이제는 예전처럼 해변에서 달리기를 하는 일은 없어요. 대신 한 번에 동네 한 블록을 뛰는 정도이지요.” 라고 그는 말한다.

무용수와 결혼한 월렌스타인은 가끔 춤을 출 때 4분의1가량을 남겨놓고 쉬어야 할 때가 많다. 춤을 그만 춰야하기 전의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법을 그는 배웠다고 한다. 실제로, 다발성 경화증이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키기 전에 쓴 이 시를 보면 마치 그러한 자신의 심정을 예언하기라도 한 것 같다.

나는 5분 동안

최고의 노력을 발휘해

열정적으로 춤을 춘다

한 번에 5분씩만 춤을 추고

당신은 그런 내 모습을 본다

-“5분짜리 무용수의 짧은 인생”중

크리스 롬바르디는 시티 칼리지 대학원 과정에서 베리 월렌스타인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