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다발성경화증협회

크리플 크릭에서의 생활

딘 크래머

다음은 딘 크래머의 크리플 크릭에서의 생활 에서 발췌한 글이다.

MS 환자가 의사로부터 자주 듣게 되는 말 중 하나가 스트레스를 피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완치가 불가능한 질병-우리를 불구로 만들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누가 알겠는가?)-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끔찍한 소식을 안고 우리의 부모, 동반자, 자녀에게 돌아가되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상황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 말에 동의를 하시는지.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도 확실하지 않은 치료에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돈을 쏟아 부어야 하고(달리 방도가 없으므로) 그러면서도 스트레스는 받지 않아야 하다니. 음, 내가 문제일까? 의사들의 제안이 조금은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스트레스를 받으면 MS 증상이 악화된다는 증거가 있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직접 경험한 바이기도 하다*. 이는 신체적, 인지적 증상 모두에 해당된다. 스트레스를 받을수록 신체 활동 능력과 사고력이 떨어지지만 역설적이게도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신체 활동 능력과 사고력이다. 내가 경험했던 두 가지 사건을 소개하겠다.

(*스트레스가 MS 증상 발현이나 악화와 관련이 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그러나 저자가 생생히 보여주듯이 스트레스가 증상의 빈도와 정도를 일시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다는 데에는 의료계도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편집자 주)

초여름의 어느 날 나는 스쿠터를 타고 근처 나무 딸기밭에 딸기를 따러 갔다. 그 밭까지는 여러 갈래의 길이 나 있어서 어떤 길이든 택할 수 있었다. 길들은 모두 좁고 양쪽에 덤불이 무성했다. 그 날은 몸 상태가 좋았기 때문에 가던 도중 스쿠터에서 내려 밭까지 걸어서 갔다. 딸기를 따면서 걸어가다가 땅벌집을 밟고 말았다. 땅벌 한 마리한테 쏘여 정신이 없는 와중에 보니 구멍에서 땅벌들이 줄줄이 기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뛸 수가 없었다. 뛴다는 것은 내게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다. 스쿠터로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벌집이 스쿠터와 내가 있는 자리 사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성한 덤불로 뛰어들 수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비틀거리며 스쿠터와 반대 방향으로 내려가 다른 길로 돌아 스쿠터로 되돌아가는 것 뿐이었다. 비틀비틀 걸어가면서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땅벌에게 쫓기고 있다는 스트레스 때문에 두 다리가 젖은 시멘트 포대처럼 무거웠기 때문이다. 웃음도 신체적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는 사실을 그 때 깨달았다. 웃을수록 더 비틀거렸고, 비틀거릴수록 웃음은 더 나왔다. 있는 힘을 다해 어정어정 걸어가면서 벌침이 MS 증상을 완화시킨다는 이론이 떠올랐다. 그러자 더 웃음이 나왔다. 미치광이 같은 웃음 소리와 느린 걸음걸이(겁이 질린 비명 소리와 빠르게 떼어놓는 발걸음이 아니라)가 땅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는지 벌떼는 따라오다 말았다. 간신히 다른 길로 돌아 스쿠터까지 다다른 나는 비교적 무사하게 상처 없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요점은 곤경에 처해 두 다리가 필요한 순간 평상시보다 더욱 다리에 의존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 다리가 필요하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또 한 번은 쇼핑을 마치고 차로 돌아갔을 때였다. 내 차는 자동 변속 차량으로 기어를 P R N D D 1 2로 바꿀 수 있다. 차는 벽을 바라보고 세워져 있었다. 시동을 걸고 차를 움직이는 순간 벽에 쿵 박고 말았다. 나는 운전석에 앉아 생각했다. 차를 뒤로 빼려면 기어를 D에 놓아야 하는가 D 에 놓아야 하는가. 분명히 “D”는 전진을 의미했고 나머지 하나는 후진을 의미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어떤 게 어떤 건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차를 움직이려면 drive를 의미하는 D나 D 기어에 놓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명확하게 상황 판단을 하지 못하는 내 자신에 대해 짜증이 났고 짜증이 날수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고 능력은 떨어졌다. 올바른 기어를 선택하기 전까지는 차를 움직이면 위험하다는 인식은 하고 있었다. MS가 인지 능력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는 하지만 다행히도 알츠하이머 질환과는 다르다. 하지만 문제는 MS가 알츠하이머 질환이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MS가 알츠하이머 질환은 아니었으므로 나는 결국 생각을 정리하여 기어를 drive를 의미하는 D나 D 대신 R에 놓고 차를 뺄 수 있었다.

MS 스트레스 역설과 관련하여 나는 몇 가지 교훈을 깨달았다. 하나는 내가 완전할 필요도 없고 MS를 앓기 이전과 똑같을 필요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깨닫자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불완전함에 동반이 되고는 했던 수치심이나 공포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또한 이런 쓸 데 없는 감정에서 놓여 나자 문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었고 이를 통해 신체적, 정신적 곤경을 보다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느린 나 자신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때로는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단 시간이 오래 걸려도 위험하지 않은 경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조급하게 도움을 청하거나 스스로를 어리석고 나약하다고 비난하는 대신 사고 능력이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느리게 길을 헤쳐나가 MS 환자로서 찾을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다.

반대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어떤 상황이든 혼자서 헤쳐나갈 수 있을 만큼 똑똑하고 강하다고 자만하는 대신 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다.

나는 이 곳 크리플 크릭에서 많은 야외 활동을 하며 지낸다. 6월 1일에는 무성하게 자란 덤불을 깎다가 트랙터가 비탈에 처박히고 말았다. 트랙터에게도 나에게도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이었다. MS를 앓기 전이라면 어떻게 해야 트랙터를 빼낼 수 있는지 금세 알아냈을 것이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공포를 느끼거나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대신 차분히 앉아 클러치에 발을 얹고 시동을 걸었다. 그러다 결국 트랜스미션 벨트가 타버리고 말았다. 나는 트랙터에서 뛰어내려 MS 환자로서 찾을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내게는 시간이 있었다. 위험할 것은 없었다. 트랙터가 금방 어디로 사라지거나 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나는 풀 깎는 데크를 들어올려 그 밑에 박혀 있는 반 정도 깎이다 만 덤불을 빼낼 수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렇게만 하면 트랙터를 다시 헛간으로 가져다 둘 수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렇게 하려면 두 팔과 허리 힘이 필요하겠구나. 결국 나는 두 팔과 허리에 힘껏 힘을 주고 데크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손으로 가시 덤불을 잡아 빼냈다. 당시에 나는 작업용 장갑을 끼고 있지 않았다. 나의 불완전한 사고 능력 때문에 장갑을 끼고 오는 것을 잊었던 것이다. 또한 나의 불완전한 신체 능력을 고려할 때 다시 집으로 돌아가 장갑을 끼고 오는 데 에너지를 낭비할 수도 없었다. 따라서 두 손은 피투성이가 되고 팔과 허리 근육이 상한 채로 트랙터를 헛간에 가져다 둘 수 있었다. 그리고 새로 발견한 기술인 도움 청하기를 활용하여 수리공을 불러 트랙터 수리를 부탁했다.

그렇다. MS 스트레스 역설은 누구나 배울 수 있는 단순한 기술로 처리할 수 있는 문제다. 단 내 경우에는 좀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아마도 내년 6월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