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다발성경화증협회

개인적인 글쓰기

“일기를 쓰려고 몇 년씩 노력은 했지요. 하지만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십대 시절에 쓰던 일기밖에 없어서, 아예 종이에 연필을 대어 보지도 않았답니다.” MS 일기 쓰기 실습에 참석한 어떤 환자의 말이다.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둘러앉아 있던 사람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십대 일기처럼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디스커버 일기쓰기 실습 진행자인 조안 미그턴(Joan Migton)이 대답했다. “하지만 일기를 하나의 도구로 활용할 수도 있어요.” 심리치료사들이 “일기쓰기”를 치료 보조수단으로 활용한 지는 수십 년이 되었지만, 의사들은 종이 위에 속마음을 털어놓는 일이 만성질환을 극복하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깨닫게 되었다. 천식, 암, 류머티스 관절염, 혹은 불면증을 앓는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일기쓰기가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 연구결과 밝혀졌다.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글로 쓰거나 말로 토로하면, 억제되었던 감정을 풀어놓는 한편 복잡하게 뒤얽힌 생각이나 감정을 정리하는 효과가 있다.” 제임스 W. 펜베이커(James W. Pennebaker)는 일기쓰기와 질병에 대한 자신의 획기적인 연구 보고서, 털어놓기: 감정 표현에 숨어있는 치유력(Opening Up: The Healing Power of Expressing Emotions)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생각을 말로 정리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손으로 종이를 넘기거나,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녹음기에 대고 말을 하는 등의 물리적 행위는 마구 휘몰아치던 생각의 속도를 늦추고 주의를 집중시켜준다.

인지장애를 앓는 사람은 기억력 보조 장치로 “할 일” 목록을 작성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만, “개인적인 일기 쓰기”는 기억력 보조 장치가 아니라 감정의 배출구로 작용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일” 목록과 “일기 쓰기”에는 유사한 점이 많다. 펜베이커는 이렇게 평했다: “자주 있는 일이지만, 무언가 울적한 일에 대해 쓰게 되면, 그 일을 더 이상 곰 씹을 필요가 없어집니다. 목록을 작성하기 전에는 마음속에서 여러 가지 할 일을 이리저리 생각해 보고 있겠지요. 하지만 일단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하면, 숨통이 트이고 고민도 좀 줄어든 듯한 기분이 듭니다.”

글로 적어보는 일이 여행 준비(펜베이커가 제의한 예)처럼 간단한 일에 효과가 있다면, 좀 더 절박한 감정에는 어떤 효과가 있을지도 한 번 생각해 보자.

“아침에 눈뜨자마자 10분 정도는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기억하느라 보낼 때가 많다!” 미시건 주 앤아버의 MS 환자 후원회원인 제인 에그너(Jane Egner)의 글이다. 그녀는 30년이 넘게 꾸준히 일기를 쓰고 있다. “내 기억력만으로는 지난 달이나 작년 크리스마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일기를 보면 무슨 일이 있었고 그 때 기분이 어땠는지를 알 수 있다.”

헬스(Health)(2001년 1-2월)에 기고한 글에서, 소설가 엘리자베스 베르크(Elizabeth Berg)는 임파종 선고를 받았던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제일 먼저, 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의지하면서 위안을 얻었다. 그 다음으로는 내 일기에 의지했다. 다시 말해, 나 자신에게 의지한 것이다. 세상에는 나 이외에는 그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는 일이 있는 법이다. 일기의 가장 큰 기능은 힘겨웠던 시절을 견딜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글은 계속된다. “하지만 그 말은 사실이 아니다. 일기의 가장 중요한 점은 계속 쓴다는 사실에 있다. 일기는 자신의 성장을 기록할 뿐 아니라, 세상 만물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외부 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부도 변한다는 사실 말이다. 일기를 쓰면 세상을 균형잡힌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고, 그 결과 희망을 얻는다.”

개인적인 일기 쓰기는 매우 사적인 경험이다. “일기를 쓰면 자기가 중언부언하거나, 바보처럼 굴거나, 상대방의 귀한 시간을 빼앗고 있는지 걱정할 필요가 없지요.” 제인 에그너의 말이다. “일기를 쓰면 생각나는 대로 끝도 없이 떠들 수 있습니다.” 철자나 구두점, 문법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쓴 문장을 줄을 그어 지우기 시작한다면 스스로에게 득 될 일이 없습니다.” 미그턴이 주의를 준다. 일기는 철저히 솔직해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미그턴은 실습과정을 시작할 때 먼저 예쁘게 제본된 공책을 나누어 주는데, 그러면 즉시 공책에 참가자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특히 일기를 손으로 쓰는 사람들의 경우, 일기를 어디에 쓰느냐도 매우 중요할 수 있다. 서점에서 커다란 일기장 전용칸을 따로 만들어 놓고,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삽화나 인용문이 들어간 “도우미 일기” 등을 제공하는 경우도 많다. 개중에는 특별히 마음, 신체, 정신의 치료나 우정, 축하행사, 감사의 기록을 염두에 두고 만든 일기장도 있다.

일기가 그렇게나 사적이라면, 사람들은 왜 모임이나 실습에 참여하는 것일까? 실습 지도자 미그턴은 운동 모임의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다른 사람과 같이라면 좀 더 꾸준히 하게 되지요.” 미그턴의 말이다. 약간의 격려 정도는 절대 해롭지 않다. 일기 쓰기에 관심이 있다면, 근처의 대학, 도서관, 종교 단체, 혹은 사회복지 센터에 일기 쓰기 과정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혁신적인 MS 일기 쓰기 모임의 사례

사회복지사인 루실 해럿시스(Lucille Haratsis)는 수용인원이 84명이며 MS 및 관련 신경질환자 입원시설로 유명한 보스턴 홈(Boston Home)에서 일하기로 했을 때, 그곳에 입원하기 전부터 꾸준히 일기를 써 온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한 글쓰기 소모임을 자신들의 관심을 키워나갈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관심도 끌 수 있는 기회로 보았다. 해럿시스는 자신의 첫 소모임에서 각자 12번은 출석하겠다는 약속을 해 달라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부탁도 하지 않았다. 8년 뒤, 이 글쓰기 소모임은 아직도 매주 모임을 갖고 있으며, 새로운 모임도 둘이나 시작되었다.

글을 쓰는 본인만이 읽는 개인적 일기와는 달리, 이 모임의 회원들은 만나서 각자의 글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환자라면 누구나 비밀 보장 수칙을 엄격히 지키기 때문에, 아주 개인적인 기억이나 주제를 모임에서 함께 나누면서도 안심할 수 있다. 모임 회원들은 서로를 잘 알고 지낼 뿐더러 다른 친목단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친밀감을 유지한다.

앤아버 MS 후원회는 6년 동안 “공동” 일기를 써 왔다. 관리사 조디 버튼 슬로윈스(Jody Burton Slowins)가 설명하듯이, “어떤 사람은 글쓰기가 심장과 정신건강에 좋은 이유를 설명했고,” 어떤 사람은 근사하게 제본된 일기장을 모임에 가져왔다. 사람들을 그 일기장을 집으로 가져가서 그냥 읽어보거나, 자기 생각을 덧붙이거나, 도움이 되겠다 싶은 기사나 인용문을 오려 붙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어린 시절 이야기를 쓰더라도, 글 종류에 관계없이 MS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 슬로윈스의 말이다. 일기는 서로를 격려하고 힘을 북돋아 주려는 그들의 공통된 노력에 대한 영구적 기록이다. 회원들은 합동 일기 쓰기의 효과에 크게 만족하여서, 다른 사람도 읽어볼 수 있도록 18명의 구성원이 쓴 글을 모아 예기지 않은 여행: 마음에서 우러나는 지혜(Unexpected Journeys: Insights from the Heart)라는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가격은 15달러로, 자세한 내용은 http://www.angelfire.com/journal21/aams를 참조하면 된다.

일기를 쓰는 사람은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쓴 글을 보여주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일기의 목적은 자기 성찰, 개인적 표현, 생존, 성장 등 지극히 개인적이다. 일기 쓰기는 가장 기본적인 의미의 자조(自助)인 셈이다.

대부분의 경우, 일기 쓰기는 절대적인 사적 자유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위력이 대단하다- 따라서 개인적인 일기를 쓰는 사람은 자녀나 간병인, 혹은 배우자가 뜻밖의 계기로 일기를 보고 충격을 받는 일이 없도록 일기장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일기 쓰기와 예술

MS를 앓고 있는 다음 두 사람은 언어보다는 빛깔과 형태에서 위로를 얻었다. 하지만 이들의 목적 역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개인적 표현, 생존, 성장이었다.

뉴욕시에 사는 이안 대러(Ian Darragh)는 어린 시절을 보낸 도네걸 해변가의 경마에 대한 추억에서 영향을 받았다. 대런의 작품은 협회 2003년 달력에 실려 있다.

뉴저지 주 포트 리에 사는 제임스 라트리디스(James Latridis)는 MS 때문에 건축설계일을 그만둔 뒤 전업 화가가 되었다. 그의 작품은 협회 2003년 달력 표지로 선정되었다.

참고자료

근처 서점에 들러 보면 자료가 많이 보일 것이다- 인터넷에서 “일기 쓰기(journaling)”를 검색해 봐도 좋다. 찾아보면 온라인 일기 쓰기 실습이나, 합동 일기, 일기 채팅, 참고자료, 일기쓰기 프로그램 등에 접속할 수 있다.

퍼스널 저널링(Personal Journaling)은 “독자에게 일기를 쓰는 새로운 방법을 알려주고 글쓰기 공동체를 소개해 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계간지이다. 인터넷 사이트인 http://www.writersdigest.com/journaling은 보기 글, 찾아보기, 책 주문서, 관련 일기 쓰기 사이트 주소 등을 제공한다.

치료하는 글쓰기: 속내를 털어놓으면 인생이 바뀐다(Writing as a Way of Healing: How Telling Our Stories Transforms Our Lives.) 루이즈 A. 드살보(Louise A. DeSalvo) 지음. 드살보의 책은 제임스 W. 펜베이커의 사회학 연구에 큰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일반독자에게는 펜베이커의 저작보다 읽기 쉽고 좀 더 실용적이다. 그녀는 정신적 외상에서 회복하기 위한 자신의 방법에다 펜베이커의 이론을 적용시켰다. 책에는 학문적 연구, 개인적 고찰, 체계적인 일기 쓰기 길라잡이가 잘 결합되어 있다. 비콘 프레스, 2000년, 14달러.

일기 쓰기 실습모임에서 아이라 프로고프(Ira Progoff) 지음. 심리치료사이자 치료상 일기 쓰기 분야의 개척자인 프로고프는, 자신의 실습모임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이 책에 나오는 집중적인 일기 쓰기 과정을 개발하였다. 일기 쓰기에 본격적으로 도전해 보려는 이에게 권한다. J.P. 타처, 1992년, 16달러 95센트.

Writing Down the Bones. 나탈리 골드버그(Natalie Goldberg) 지음. 오디오북으로도 구입 가능하다. 이 고전적인 초보자용 지침서는 저자 자신이 쓴 일기 발췌분, 글쓰기에 대해 희망을 주는 이야기, 직접 글을 써 볼 수 있는 실습란 등으로 꾸며져 있다. 확연한 선(禪) 식으로 꾸며진 이 책은 글쓰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 의도로 계획되었다. 샴발라 출판, 1986년. 12달러 95센트. 오디오북: Sounds True, 1999년, 29달러 95센트.

더 알고 싶다면

* MS와 정신(MS and the Mind): 협회 소책자

* 다발성 경화증과 우리의 감정(Multiple Sclerosis and Your Emotions): 협회 소책자

* 우리 공동체(My Community)

* 인지장애 극복하기(Solving Cognitive Problem) : 협회 소책자 로셰 라트너(Rochelle Ratner)는 시인이자, 편집자이자 글쓰기 강사이다. 라트너는 협회 뉴욕시 지부에서 MS를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글쓰기 실습을 지도하고 있다.